등록상표의 사용의무

조회 수 3958 추천 수 0 2009.10.28 17:06:18
변리사 전광출

 

상표란 원래 사용되어야만 상표로서 보호받을 가치가 있다. 국가가 상표를 보호해 주는 이유가 상표라는 ‘표장(mark)’ 자체에 가치가 있어서가 아니라, 상표가 경제활동에서 수행하는 기능에 있기 때문이다. 상표는 상품의 출처를 표시하고, 품질을 보증하며, 광고선전기능을 가진다. 상표는 사용되면 상표사용자의 신용이 축적되어 재산권이 된다.

 

이 모든 상표의 기능은 상표를 상품에 사용하지 않으면 생기지 않는다. 실제로 상표는 시장에서 사용되는 순간 숨쉬기 시작하고 사용되고 있는 동안 살아 있게 되며 사용을 멈추면 숨을 거둔다. 따라서 등록만 해놓고 아직 사용하지 않고 있는 상표는 법적으로만 출생신고가 되어 있을 뿐 실제로는 태어나지 않은 단순한 ‘표딱지’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왜 사용되지도 않은 상표를 등록하여 강력한 독점권을 미리 부여할까. 가장 큰 이유는 상표를 미리 확보해 저장해 두었다가 상품출시에 맞추어 안정적으로 사용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만약 상표를 사용한 뒤에만 등록을 받아준다면 상품출시와 더불어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을 뿐 아니라 등록을 받지 못하게 된다면 영업활동에 큰 차질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장상표는 등록일로부터 3년간이라는 ‘저장기한’이 주어져 있다.

 

이 ‘기한’이 지나면 어떻게 될까. 저장기간을 초과했다고 하여 특허청이 직접 조사해 등록을 취소하는 것과 같은 적극적인 제재는 없다. 오직, 이해관계자가 저장기간이 지났음을 이유로 취소심판을 청구하여 등록을 취소할 수 있을 뿐이다. 취소심판을 당한 상표권자로서는 문제의 상표가 심판청구일 전 3년 이내에 문제가 되는 지정상품에 사용한 사실을 입증하지 못하면 해당 등록 상표가 취소되고 이후 3년간 다시 출원할 수 없다는 제재만 감수하면 된다. 그러다 보니 특허청 등록원부에는 저장기간을 넘긴 등록상표가 수두룩할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특허청 통계를 보면 2008년 한 해 등록을 신청한 상표는 12만 8천 건, 등록된 건수는 6만 5천 여 건. 2007년과 2006년에도 대략 이 정도의 출원과 등록이 이루어졌는데 이렇게 해서 2008년 말 현재 특허청에 등록되어 있는 상표는 67만 4천 여 건에 달한다.

 

이들 등록상표 가운데 어느 정도가 실제로 사용되고 있는 상표인지는 관련 통계는 없기 때문에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다. 다만, 상표등록 취소심판의 통계를 통해 그 사정을 조금은 엿볼 수는 있다. 취소심판은 대부분 저장상표에 대해 제기되기 때문이다. 작년한 해 1천6백 5건의 취소사건이 처리되었는데 이 가운데 취소된 건이 1천26건으로 전체의 64%가량이 된다. 그나마 실제로 사용사실을 입증하여 취소를 면한 사건은 1백73건으로 10%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10%만 사용되고 있다거나 64%가 사용되지 않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미리 사용사실을 확인해 본 뒤 취소 가능성이 높은 상표에 대해서만 심판이 청구되기 때문에 취소율이 높은 것은 당연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한해 1천 4, 5백 건이 넘는 취소심판이 들어오는 것을 보면 장기간 저장되어 있는 상표가 실수요자의 상표선택을 방해하고 있는 숫자가 적지 않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특허청도 장기 저장상표를 줄이기 위해 여러 가지 묘안을 찾고 있다. 상표권을 행사하려면 상표권자가 사용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거나 신청단계에서 사용의사를 확인하는 절차 마련 등의 법 개정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저장상표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상표등록제도의 정상적인 운용을 막고 있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이들 장기 저장상표는 한정된 상표자원을 선점하여 실수요자의 상표선택을 막는 일종의 ‘사재기’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를 막는 보다 효율적인 장치가 필요하다. 앞서 말한 취소심판제도가 있지만, 심판절차에는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이 들어간다. 게다가 이들 저장 상표권자가 민사소송을 제기하거나 형사고소라도 하게 되면 상표사용자는 더욱 난감하게 된다.

 

더구나, 대법원은 불사용 상표라도 등록취소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상표권 침해죄가 성립된다는 뜻의 판결만 내놓고 있어 장기 저장 상표권자들의 기를 살려주고 있다. 법이 상표를 보호하는 이유가 상표의 기능 때문임을 생각하면 대법원 역시 상표로서 기능하지 않고 있는 불사용 상표권에 대해서는 이웃 일본의 법원처럼 권리를 제한하는 쪽으로 해석해 주어야 할 것이다.<끝>
[매경이코노미 제1527호(09.10.21일자)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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